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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EIC Inside/인터뷰

30년간 육군 장교 전역 후 주한미군 사령부로 이직! 👏 비결은 '토익'?

 

 

대한민국 경기도 평택시에는 USAG 험프리스가 있습니다. 평택 미군기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위치는 대한민국이지만 미국식 주소를 할당하고 있으며 군사지역인 만큼 부대 개방행사 외에는 용무 외의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죠. 

 

이러한 USAG 험프리스에서 주한미군 사령부 한국인 직원으로 근무 중이신 분이 있습니다. 약 30여년간 육군에서 장교로 복무 후 전역하여, 현재 전시계획 업무를 담당 중이신 구충회 매니저님인데요. 구 매니저님이 육군 장교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주한미군 사령부로 이직하게 된 것에 '토익'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해외 파병, 연합사 근무 경험 등 다이나믹한 경험들에 모두 토익이 함께했다는데요. 어떻게 영어와의 오랜 여정을 이어왔는지 흥미롭고 생생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영어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분들께도 도움이 되는 조언까지 전해 드립니다. 지금 살펴보세요. :)

 

 


 

"토익, 커리어를 인도해 준 오랜 죽마고우 같은 존재죠"

주한미군사령부 구충회 매니저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 미 육군기지에 위치한 주한미군사령부(이하 주한미군사)에서 전시계획 업무를 담당하는 구충회라고 합니다. 직장에서는 간단히 미스터 구 또는 영어 이름인 웨인(Wayne)으로 불리고 있어요.

 

 

Q. 주한미군 사령부와 전시계획 업무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주한미군사는 한미연합사령관, UN군사령관을 겸직하고 계신 폴 라카메라(Paul LaCamera) 장군께서 지휘하는 한반도 주둔 미군의 최고사령부입니다. 사령부 예하에 주한 미 육·해·공군, 해병대사령부와 특수전사령부, 우주군사령부 등이 있죠. 주한미군의 최상급 제대인 만큼 철갑(Iron Clad) 동맹인 대한민국과 함께 적의 침략을 억지하고 필요시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어하는 것이 부대의 주된 임무입니다.

 

이러한 사령부의 임무에 부합하도록 평시에는 소속 부서의 미군과 함께 전시 계획을 수립하고 훈련하며 유사시에는 전투참모단의 일원으로 미군과 함께 전쟁에 참가하여 전승에 기여하는 것이 저의 업무이자 역할입니다. 전시 계획 수립과 실행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군과의 협력이 긴요한 만큼 한국인 직원으로서 당연히 양국 간 가교 역할, 메신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Q. 과거 육군 장교로 약 30여년 간 근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육군 장교 복무 후 전역하여 2020년부터 현 직장에 재취업하였죠. 직업군인은 신분과 계급에 따른 정년이 정해져 있는데요. 장교라면 4성 장군까지 진급하지 않는 한 언젠가는 원치 않더라도 군을 떠나야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정년이 2022년 4월로 정해져 있었고, 정년 2~3년 전부터 재취업 등 전역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며 틈틈이 준비하고 있었어요. 경력과 자격, 적성을 고려하여 여러 직장을 알아보던 중 군 복무 중 근무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던 미군 부대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먼저 재취업에 성공한 후배의 권유와 안내를 받아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 주한미군사 본청

 

 

 

Q. 주한미군 사령부인 만큼 영어 활용도가 높을 것 같은데요. 어느 정도인가요?

주한미군사는 대한민국 영토 내에 있지만 캠프 정문을 통과하는 순간 미국에 입국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 동료를 만나지 않는 한 하루 종일 영어로 대화해야 하고, 영어로 문서를 작성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읽어야 해요. 영어 능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직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주요 부서에는 통역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 직원분도 계시고 카투사라고 불리는 한국군 어학병도 있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해외 유학이나 이주를 가면 처음엔 현지 언어가 서툴다가도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숙달되듯 여기서도 이러한 업무 환경으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게 능력이 향상된다는 점이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토익을 처음 응시한 것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 초반 국방대학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일 때 논문작성 자격 취득을 위해 처음 토익을 응시했습니다. 당시 800점 중반의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시험을 위해 따로 공부한 것은 없었지만 아마도 사관학교 교육과정과 군사 영어반 과정, 대학원 입학 직전의 미군 부대 근무 경험 등이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이후로 대략 2년에 한 번 정도는 실력 유지와 평가를 겸해 토익을 꾸준히 응시했었고, 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거의 반강제로 함께 시험을 보기도 했어요. 다행히 공부라면 담을 쌓던 아들이 적어도 영어만큼은 아빠와의 경쟁심에서인지 많은 흥미를 갖게 되었고 후에 미국 유학에 주저 없이 도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토익을 꾸준히 응시하셨으면,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으실 것 같아요. 

현재 근무하고 있는 주한미군사에 입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 중 하나가 육군 장교 복무 당시, 토익 특별시험 응시를 통해 미 버지니아주에 소재한 미육군 제병협동지원사령부(CASCOM)에서 연락장교로 2년간 파견 근무한 경험 덕분입니다. 해외근무, 특히 미국에서의 근무를 오랫동안 희망해왔던 저로서는 그야말로 마지막 기회였는데 토익 덕분에 이런 행운을 얻을 수 있었어요.

 

더불어 꾸준하고 정기적인 토익시험 응시를 통해 영어실력을 향상하고 유지한 것이 결정적인 시기마다 늘 비장의 무기가 되어 주었죠. 육군 장교로 복무할 당시 우리 군도 한미 연합작전이나 해외 파병 등에 필요한 어학 자원의 수요가 늘면서 어학능력, 특히 영어 능력을 매우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객관적인 지표인 토익 성적을 인사 기록에 포함하는 한편 일정 수준 이상의 상급자는 어학 특기자로 지정하기 시작했어요.

 

응시했던 토익 성적을 통해 저는 일찌감치 어학특기를 부여받았고 이라크 다국적군사령부 파병,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단 협상담당, 한미연합사 계획장교 직위 등에 먼저 추천받아 근무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토익을 통해 어학직위에 우선 보직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그로 인해 영어능력을 조금씩이나마 더 향상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겠지요.

 

 

Q. 연락장교 지원 당시 응시했던 토익 특별시험에 관해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앞서 말씀드렸던 정기적인 토익시험 응시는 세월이 흐르면서 저도 어느새 관심이 줄어든 상태였고 육군에서 어학특기를 부여받은 뒤로는 영어공부를 계속해야 할 동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위와 같은 미국 파견직위 모집이 갑자기 공지되었는데, 최근 1년이내 토익 성적을 요구하더군요. 기준 점수는 토익 6~700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원 당시 대전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부대 바로 옆에 동기생이 지휘하는 부대가 있었습니다. 해당 부대에서는 장병들의 잠재역량 향상을 위해 토익 특별시험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었죠. 우연히 이 소식을 듣고 긴급히 응시하여 토익 900점을 취득하였고, 자격조건에 부합하는 성적을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군의 해외파견직위 선발에 어학성적만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근무평가 결과와 교육성적, 인성과 품성 등 다른 조건도 종합적으로 평가하지만 토익 성적이 기준 점수 이하라면 당연하게도 추천자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주한미군사 본청

 

 

 

Q. 간절히 꿈꾸시던 미국 생활은 어떠셨나요? 

생전 처음, 그것도 가족을 동반한 미국 생활은 모든 게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파견지인 미군 부대 근무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었는데 실생활은 전혀 다르더군요. 현지에서 산다는 것은 간단한 생활 영어에서 그치지 않고 가구, 차량을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주택을 리스하고 인터넷을 설치하고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까지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선 것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미국 생활 2년 차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들이 고속도로에서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었죠. 현지 경찰이 긴급 조치를 취했는데 차량은 가까운 폐차장으로 견인되고, 아들은 과실에 따른 티켓을 발부받고 어쩔 줄 모른 채 도로 한복판에서 발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차량을 찾아 집 근처 정비소까지 직접 견인하여 수리하고 견인비 등을 보험 청구하고, 아들의 범칙금을 납부하고 수리한 차량을 귀국 직전 처분하기까지 가장 복잡하고 난처한 상황에서 영어를 구사해야 했던 경험이었습니다. 미국의 교통사고 처리시스템과 관련 용어에 서툰 데다가 귀국이 임박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진땀을 아주 많이 흘렸어요.

 

 

Q. 듣기만 해도 진땀이 나는 에피소드네요. 선생님이 생각하셨을 때 미국 실제 영어와 토익 영어는 얼마나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토익에서 다루는 영어는 미국이나 미군부대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영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인 미국식 발음과 속도, 표현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도구이지요. 다만, 미국인의 일상생활이나 일반적인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직종이 전문 분야에 속한다면 그에 따르는 어휘나 용어는 당연히 추가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표준 발음과 속도 이외에 쉽게 알아듣기 힘든 일종의 속어나 사투리 같은 영어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셔야 하겠습니다.

 

 

Q. 토익 공부는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까요?

토익이 취업이나 승진, 선발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고득점 취득을 위한 노하우나 요령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단기적인 목표가 있으신 분들이라면 현실적으로 어쩔수 없는 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좀 더 길게 멀리 보는 것이 좋습니다.

 

토익 기출문제집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하여 영어와의 연결을 계속 이어 나감으로써 영어에 대한 흥미와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보다 중요합니다. 토익이나 영어를 목표한 점수를 얻어야 하는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쉽게 지치고 한계를 느끼기 쉬워요. 최대한 생활의 일부로 삼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익숙하게 만드는 한편, 토익시험은 자신의 현재 수준을 중간 점검하여 동기를 자극하는 도구로 활용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어 실력은 갑자기 눈에 띄게 향상되지는 않습니다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자주 꾸준히 접하다보면 성적은 그 결과로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Q. 현 직장에서 토익 응시 경험이 도움이 된 적을 느끼신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메일을 읽고 쓸때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실감하고 있어요. 주한미군사에서의 근무는 토익의 모든 파트를 융합하고 응용해서 활용하는 토탈 토익, 종합 토익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시시콜콜한 잡담부터 제가 맡고 있는 전문적인 직무까지 영어로 이야기하고 보고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문서화하는 등 모두 영어로 이루어지지요. 그 중에서도 좀 더 자주 많이 사용하는 툴이 이메일이므로 짧은 시간에 주어진 지문을 읽고 내용과 의미를 파악해야하는 RC 공부가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주한미군사에서는 모든 직무를 수행하는데 영어가 기본언어인 만큼 한국인 직원 채용 시 토익 등의 영어 성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채용 직위에 따라서는 직접 대면 또는 화상 영어인터뷰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고요. 채용 뒤에는 추가로 영어 성적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근무기간 중 매년 관리자가 한국인 직원의 영어능력을 관찰식으로 평가하여 이를 근무평가에 반영하고 승진이나 성과금 지급 등에 활용합니다.

 

 

Q. 육군 장교 전역 후, 현재 '2막'을 살고 계신데요. 도전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평균수명 80세가 넘는 초고령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평균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한다면 60세 내외에 은퇴한 뒤에도 대략 20년을 넘게 살아야 하고요. 여러분이 지금 한창 젊은 나이라면 앞으로는 직업이나 직장을 두세번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들어 직장에서 은퇴하더라도 자신이 쌓아 온 역량과 경험을 사장시키지 않고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기여하면서 조금이라도 성장하는 자신을 볼 수 있다면 그게 삶의 기쁨이자 보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짧은 기간이나마 미국생활도 해봤고 운좋게 미군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여전히 영어가 부족함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 동료 중에는 영어권에서 자랐거나 유학하여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도 많은데요. 부족한 영어능력을 보완하기 위해 내년 봄부터는 통역대학원에 도전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직장을 통해 영어와 접촉을 유지하고 여가시간을 활용해 좀더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다면 언젠가는 영어를 잘하는 토종 직원으로 평가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

 

 

 

Q. 마지막으로 인터뷰 소감 및 영어로 인해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조언 부탁드립니다.

영어와의 여정으로 치자면 아직 갈길이 멀지만 인터뷰 기회를 주셔서 영광입니다. 흔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영어 조기교육을 했다거나, 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내지 유학생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 분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엔 중학교 시절 영어선생님이 없어서 농업선생님께 영어를 처음 배웠고, 사관학교에 가서야 원어민을 처음 본 사람입니다. 지금 여러분 주변을 돌아보시면 원어민과 다름없는 훌륭한 영어학습 매체가 많습니다. 스마트폰 하나와 다부진 의지, 영어에 대한 흥미만 있다면 자신에게 맞는 좋은 툴을 골라 얼마든지 영어를 숙달할 수 있지요. 소질있는 분야에 정진하여 전문가가 되는 한편, 영어를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지원자이자 그 긴 여정의 친구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남모르게, 또는 남보다 앞서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이 여러분의 삶을 더욱 빛내 줄 비장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건투와 성공을 응원합니다. :D

 

 


 

 

구충회 매니저님은 "토익은 저의 커리어를 인도해 주고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동반자가 되었다"며 "여전히 영어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해주는 오랜 죽마고우 같은 존재"라고 전해주셨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약 20년 넘게 이어온 토익과의 시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셨는데요. 토익이 단순한 시험이 아닌, 더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

 

구 매니저님이 오늘 전해주신 조언처럼, 꾸준한 노력과 도전 정신으로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통해 여러분의 커리어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토익스토리>는 모든 분을 응원하며,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